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자와 이치로 (문단 편집) == 기타 == * [[바둑]] 실력이 거의 6단으로 고수다. 2007년에는 동료 의원이자 7단인 [[요사노 가오루]]와 바둑 승부를 했는데 승리하기도 했다. 요사노가 봐준거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진짜로 졌다고 요사노가 인정했을 정도니 대단한 고수인 모양. * 2012년 이혼하였다. 아내 가즈코는 [[니가타현]]을 기반으로 한 건설재벌 '후쿠다구미 그룹'의 총수 후쿠다 다다시의 장녀였으며 73년 호텔 뉴오타니에서 열린 결혼식은 호텔 개업 이래 가장 성대한 결혼식이었다고 할 정도였다. 오자와 이치로와 가즈코는 각각 오자와 저택내에 다른 건물에서 생활할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[* 세타가야에 위치한 오자와 저택의 부지는 1000평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.] 가즈코는 오자와의 지역구 이와테현에 있는 후원자들에게 보낸 편지로 이혼 사실을 알렸는데 편지에 따르면 오자와는 TV리포터, 유명 요정의 마담 등과 외도를 하고 이들과의 사이에서 자식까지 낳았다고 한다. * 일본에서 여성 편력이 화려하기로 유명한 정치인이다. 정치적 스승인 [[다나카 가쿠에이]]의 중재로 내키지 않은 결혼을 한 탓인지, 결혼 후에도 자주 다니던 술집 여성과 교제를 계속 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고, 아내 가즈코의 위의 폭로 외에도 비서와의 불륜, 심지어 현역 민주당 여성 의원인 [[아오키 아이]]와 료칸에서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듯한 의심이 드는 사진이 파파라치에게 찍히기도 했다.[[https://m.ilyo.co.kr/?ac=article_view&entry_id=39205|#]] 이런 아버지의 모습 때문인지 아내와 이혼 시 자식들도 전부 아내를 따라가서 슬하에 자식이 없다. 때문에 지역구 세습은 꿈도 못 꾸는 상황. 물론 오자와 본인은 반세습 의지가 강해서 꽤 오랫동안 자신은 지역구를 세습시켜주지 않겠다고 공언했다. * 한국 정치인과 비교하자면 이리저리 당적을 바꾸면서도 선거에선 기어코 살아남는 [[이인제]]랑 유사한 측면이 있는데, 이인제는 운빨이 다했는지 2016년 [[제20대 국회의원 선거|20대 총선]], 2018년 [[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|7회 지선]]에서 연달아 낙선한 반면, 오자와는 단 한 번의 낙선 기록이 없었기 때문에 이인제의 [[상위호환]]이라 할 만하다. 탄탄한 지역기반, 전략가 인상 등의 측면에서 보면 [[박지원(1942)|박지원]]과도 흡사한 측면이 있는데[* 1942년 동갑내기에 생일도 겨우 12일 차이다.] 여기도 2020년 21대 총선에서 떨어졌으니[* 얼마 안가 [[문재인 정부]] 국정원장으로 임명되긴 했다. 이렇게 보면 같은 당 소속이었지만 계파가 달라 한땐 분당까지 하며 과거 소속당이랑 싸우다 다시 합쳤다는 점에서 또 공통점이 있다.] 오자와의 끈질긴 정치 생명력은 대단하긴 하다. 대만 정치인 중에선 [[쑹추위]]와 유사한 점이 있다. * 외교적으로는 [[친중]]파이다. 2007년 민주당 대표 시절 [[후진타오]]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[[중국 공산당]]-[[민주당(일본 1998년)|민주당]]의 우호관계 협의를 다졌고, 2009년 정권교체 직후에 간사장으로써 600명의 대인원을 이끌고 다시금 방중하여 후진타오 주석을 만난 자리에서 '''일본의 해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. [[인민해방군]]의 야전사령관으로 노력하고 있다'''는 말을 남겼다.[[https://www.okinawa-seisaku.org/archives/775|#]] --1990년대 당시의 행동을 생각하면 완전 상반되는 행동이다.-- * 엄청난 [[다혈질]]이다. [[신진당]] 시절 오자와의 독선적 태도를 카메라 앞 면전에서 비판한 의원이 있었는데, 오자와의 일갈은 '''한 번 해볼까?'''였다. 열이 뻗친 의원이 "한 번 해보자고!"라고 맞서자 그 의원을 향해 뚜벅뚜벅 걸으며 진짜 싸우려 했다. 주변 사람들이 말려서 앉기는 했다만.[[https://youtu.be/11-6wuPq6zA|#]] 또 민주당 정권 시절 간사장으로써 기자회견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, 기자들이 [[아키히토]] 천황과 [[시진핑]] 당시 부주석을 회담시킨 것은 천황의 정치이용이 아닌가라며 비판했다. 이에 오자와는 처음엔 존댓말을 쓰더니 얼마 안 있어 기자들과 반말로 설전을 벌이며 "헌법이라도 읽어보고 와라", "그런 병신같은 소리 하는 인간은 내각의 역원에서 나가는 게 좋다", "알았냐?" 등의 극언까지 나왔다.[[https://youtu.be/f8ubtlLVu5I|#]] * 1992년 재단법인 [[존 만지로]] & 윗필드 기념 국제 풀뿌리 교류센터를 설립하기도 했다. [[존 만지로]]와 그 시대(ジョン万次郎とその時代)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